연애하다가 갑자기 시간을 좀 갖자는 말을 들으면 상당히 곤란해집니다.

헤어지자는 건지, 계속 만나자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거든요. 심지어 언제까지 시간을 가져야 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을 통보받은 셈이지요.

듣는 사람은 속이 타들어 갑니다.

“그럼 우리 헤어지는 거야?”

“나 아직 좋아하긴 해?”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당장이라도 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겠지요.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상대는 시간을 달라고 했는데, 나는 시간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상대는 혼자 생각할 여유가 필요하다는데, 나는 지금 당장 마음을 정리해서 대답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시간을 갖자고 하는 사람의 속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는 이미 연애가 버거운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사소한 일에도 다투고, 연락이 조금만 늦어도 서운해하고, 감정이 상하면 당장 풀어야 하고.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 있지만 연애하는 일이 점점 피곤해지는 거예요.

그러니 잠깐이라도 혼자 있고 싶은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 순간에도 계속 연락이 오고, 사랑을 확인해 달라는 요구가 이어진다면 어떻겠습니까?

시간을 달라는 사람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 것으로, 왜 시간을 갖고 싶었는지 몸소 증명해 주는 셈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물론 시간을 갖자는 말이 언제나 이런 뜻은 아닙니다. 이미 헤어질 마음을 굳혔지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정말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싶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시간을 달라고 했다는 사실만으로 재회를 확신할 수도, 이별을 확정할 수도 없어요.

그 사람도 후폭풍이 왔을까?1,900원

다만 확실한 건 하나 있습니다.

지금 당장 상대를 설득한다고 해서 없던 확신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오히려 이럴 때는 시간을 주는 편이 관계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은 연락을 꾹 참고 있다가 사흘 뒤에 생각이 정리됐냐고 물어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서로의 감정을 돌아볼 수 있도록 실제로 거리를 두는 시간이지요.

그렇다고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언제쯤 다시 이야기를 나눌지, 그동안 연락은 어떻게 할지 정도는 서로 정해둘 수 있겠죠.

“알겠어. 나도 생각해 볼게. 대신 언제 다시 이야기할지는 정하자.”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나 역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왜 이 관계를 버겁게 느꼈는지, 우리가 자꾸 부딪혔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만난다면 어떤 부분을 바꿀 수 있을지 말이에요.

그렇게 떨어져 지내다 보면 상대도 마음을 정리하게 될 겁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편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연애할 때는 몰랐던 상대의 소중함이 생각날 수도 있겠지요.

이때 중요한 건 그리워할 시간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서로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알아볼 기회를 갖는 것입니다.

약속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계속 만나고 싶은지, 다시 만난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 말이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상대가 계속 시간을 달라는 말만 반복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도 상대방을 무기한 대기 상태로 둘 권리까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상대에게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듯, 나에게도 관계를 계속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기다리는 쪽이라고 해서 무조건 상대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입장일 필요는 없어요.

서로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함께 방법을 찾으면 되고, 한쪽이 끝내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면 다른 한쪽도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실 시간을 갖자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 시간이 얼마나 길었느냐가 아닙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두 사람이 무엇을 깨달았고, 다시 만났을 때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저 보고 싶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면 예전의 문제도 함께 돌아올 테니까요.

반대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예전에 힘들었던 이유까지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면 잠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을 갖자는 말이 반드시 이별의 예고편인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관계를 끝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민해 보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 불안한 마음에 상대를 몰아세워 결론부터 받아낼 필요는 없습니다.

시간을 달라는 사람에게 시간을 주는 것.

어쩌면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재회 노력일 수도 있지요.